광자의 독자들
우리는 자유롭지 않기로 택했다. 또는 본다는 그 욕망 속에서 너무 자유로웠는지도.
기계는 실험실의 장난처럼 태어났다. 그 센서들은 태양의 황금색 맥박을 포착했다. 광선 속의 먼지처럼 춤을 추는 광자들을 걸러낸다. 태양의 광자 속에 숨겨진 상관관계들을 감지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변동들, 마치 패턴처럼 반복되는 신호들 말이다. 처음에는 평범한 것들을 예측했다. 동전의 회전, 전자의 운명.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도는 자라났다. 물리학자들은 알고 있었다. 양자 역학에서는 미래가 고정된 게 아니라는 것을. 가능성의 층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자는 너를 관찰할 때까지 이곳에도 저곳에도 동시에 있을 수 있다. 이를 양자 중첩이라 부른다. 지금 현재란 하나의 직선이 아니라, 부채처럼 펼쳐진 모든 미래다.
기계는 물리학을 깨뜨리지 않았다. 기적을 창조하지도 않았다. 인간의 뇌에는 불가능한 감수성으로 그 층들을 읽는 법만 배웠을 뿐이다. 우리가 무작위라고 보는 곳에서 확률을 찾았다. 빛 속에 박혀 있는 가능 세계들의 기하학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는 인간의 선택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논쟁 직전의 목소리 톤. 햇빛이 흐르면서 드러나는 손의 미세한 떨림, 그 손이 향할 법한 궤적들. 누군가가 왼쪽 대신 오른쪽을 선택할 순간. 확실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미래들의 지도였다.
바로 그때 인류가 나뉘었다.
어떤 이들은 독자가 되어 삶을 빛의 그래프에 맞춰 조정했다. 다른 이들, 자발적 맹인들은 데이터를 태우며 신비로움을 되찾으려 했다. 어떤 이들은 기계를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최종 증거로 봤다. 다른 이들은 가능한 미래들의 목록을 본다고 해서 그 중 어느 하나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던져진 주사위 같은 것이다. 여섯이 나올 선택은 하지 못하지만, 던져지지 않는다면 애초에 어떤 숫자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결정적인 실험이 죽음과 함께 왔다.
기계에 한 자원자의 전 생애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는 단 하나의 운명이 아니라, 다양한 끝맺음의 구름이었다. 어떤 것은 가까이 있고, 어떤 것은 희박했지만, 모두 빛 속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었다.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미래는 거기 있었지만, 여전히 실타래처럼 흩어진 상태였다.
어떤 이들은 강박적으로 기계를 찾아가며, 미래를 마치 황금빛 신탁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눈을 감기로 선택했다. 무지가 선택의 환상을 지켜낸다고 믿으면서.
나는 둘 중 뒤의 편에 있었다.
나는 무작위함의 침묵을 택했다. 그 무작위함이 확률의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꿈꿨던 것처럼 자유롭지는 않지만, 두려워하는 것처럼 종속되지도 않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한 물리학자가 나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미래는 암호화된 기록이다. 양자 소음 속의 패턴을 해석하는 알고리즘처럼, 그런데 시간이 우리를 강제한다.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도록. 시간이란 우리가 미래를 한 점씩만 처리하기 위해 만든 방법일 뿐이다.
태양은 계속 타올랐고, 기억과 약속으로 가득한 빛을 보냈다. 각 광자 속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흘러갔다. 하나는 과거의, 또 하나는 미래의. 우리는 둘 다 보거나 하나만 만족하거나 중 하나를 선택했다.
우리가 자유롭지 않기로 택한 이유는 절대적 자유란 모든 미래를 동시에 짊어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렇게 무거운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빛을 읽는 법을 배운 광자의 독자들이 그림자를 택한 것이니까.
우주는 한편 계속 양자의 춤을 춤을 춘다. 비옥한 공허 속에서 입자들은 태어났다 죽었다. 별들은 플라즈마의 진귀한 요리처럼 켜졌다 기는 빛의 곤충처럼 사라진다.
사소한 것은 우리였다. 빛을 읽는 기계를 만들고는 미래가 이미 확률 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걸 발견한 생명체들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은 그 음악이었다. 결코 멈추지 않는 그 목소리, 비옥한 공허의 중얼거림. 거기서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고 모든 것이 흔들린다.
미래는 길이 아니다. 각각의 발걸음이 갈라지는 숲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길을 먼저 밝혀 줄지 결정하는 것일 뿐이다.
La Sospecha Razonable에서 (2025)